하이요:-ㅁ
마리큐 이에요.
또한번 제 홈페이지를 놀러와주셔서 감사해용.!!
밖이 클린한게 헤헤 즐거워요.형동생들은 오늘 무엇을 하며 보내셨나요? ^^
바로 이야기할 핵심은 로스트 치킨 샐러드 밀 박스 이라는 것과 신경해부학의 역사 이라는 것 이랍니다.
이제 준비되었으면 지금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가보쥬 :-ㅁ
리얼리? 뼛속가지 다르다! 로스트 치킨 샐러드 밀 박스 이라는 것과 신경해부학의 역사 이라는 것의 이정도 알아야지!
1회제공량 | 197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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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로리 | 170kcal |
제조사명 | 스타벅스 |
조사년도 | 2019 |
지역명 | 전국(대표) |
자료출처 | 식약처('19) |
영양성분
- 단백질 : 14g
- 당류 : 10g
- 나트륨 : 330mg
- 포화지방산 : 0.9g
1) 선사시대에서 로마시대까지
고대 이집트의 기록 중에는 신경계에 대해 기술한 부분이 있다. 기원전 3500년경의 기록을 필사한 기원전 1700년경의 이집트의 의학파피루스1) 중에는 뇌에 해당하는 단어를 찾을 수 있으며 뇌의 표면의 주름, 뇌막과 뇌 밑의 체액에 대해 기술되어 있다. 이집트 19왕조(기원전 1308∼1194년경)의 부조에는 제사장이 소아마비2)에 의해 한쪽 다리가 위축되고 발의 형태가 변형된 모습으로 정확하게 나타나 있다.
기원전 650년경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메소포타미아 아슈르바니팔3)의 궁전에는 '죽어가는 사자'란 이름의 부조가 있으며 활에 맞아 척수가 손상되어 마비된 두 다리를 끌고 가는 모습이 명확하게 나타나 있다. 이러한 자료들로 보아 고대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 신경계통의 구조와 기능에 대한 지식이 어느 정도는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보다 정확한 해부학적 관찰에 대한 기록은 그리스 시대에 나타난다. 남부 이탈리아의 그리스 식민지인 크로톤 지방 사람인 알크메온4)은 동물을 해부함으로써 과학으로서의 의학의 기초를 세우기 시작하였다. 그는 시각신경을 발견하였고, 태아의 형태로부터 추리하여, 머리 부분이 다른 부분보다 먼저 발달된다고 기술하였다. 소아시아 출신으로 아테네에서 활약한 아낙사고라스5)는 마음과 영혼은 뇌에 있으며 신경이 뇌에서 기원한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다.
의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히포크라테스6) 시대에는 신경계통의 구조에 대한 해부학적 기록들을 찾아볼 수 있다. 기원전 400년경에 쓰인 것이라고 믿어지고 있는 『신성한 질병에 대하여』7)에는 사람의 뇌는 다른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수직으로 배열된 막에 의해 두 개의 대칭적인 반구로 나누어지고 뇌로 들어가는 많은 혈관들이 있으며, 이중의 일부는 가늘고 길지만, 두 혈관은 두껍다. 이들 중 하나는 간에서 오며, 하나는 지라(비장)에서 온다고 기술되어 있다. 이 저술에서 저자는 뇌를 조사하기 위해 염소의 머리뼈(두개골)를 해부했다고 한다. 신성한 질병, 즉 뇌전증(간질)은 뇌의 이상으로 나타나며 감각과 운동, 지능이 모두 뇌에서 비롯된다고 기술되어 있다.
그리스의 위대한 철학자인 아리스토텔레스8)는 자연과학자로도 많은 업적을 남겼지만 신경해부학의 발달에는 상당한 저해 요소가 되었던 인물이었다. 히포크라테스와 그의 스승인 플라톤9)이 지능과 감정을 뇌의 기능으로 생각했던데 반해, 아리스토텔레스는 심장이 지능을 담당하는 기관이고 마음과 영혼이 있는 장소로 생각하였다.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는 기원전 3세기 당시 학문의 중심지였고 과학으로서의 의학이 발달했으며 동물과 인체의 해부가 규칙적으로 시행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소아시아에서 태어나 알렉산드리아에서 활약한 칼세돈의 헤로필로스10)는 '해부학의 아버지'로 알려져 있다. 그는 뇌가 신경계통의 중심기관으로 지능을 담당하는 기관임을 확실하게 인식하고 있었으며, 신경을 운동신경과 감각신경으로 구분하였고 신경이 척수에서 근육으로 이어지는 것을 추적하였다. 시각신경, 동안신경, 삼차신경, 안면신경, 청신경, 설하신경 등 여러 뇌신경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으며, 대뇌의 주름에 대해서도 언급하였고 대뇌와 소뇌를 구분하였다. 뇌실과 뇌정맥굴을 기술하였고, 정맥굴합류(정맥동교회)11)를 발견하여 오늘날에도 'torcular Herophili(헤로필로스굴)'이라고 그의 이름이 붙어 있다.
생리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키오스의 에라시스트라토스12)는 사람의 뇌에 주름이 많은 것이 동물에 비해 지능이 높은 이유라고 결론지었고 넷째뇌실(제4뇌실)의 아래 부분을 필첨13)이라고 명명하였다고 전해진다. 뇌의 기능에 대해 기술하여 영기(영, 프네우마)가 허파로 들어와 '생명영기'로 바뀐 후 동맥을 통해 뇌로 전달되어 여기에서 '동물영기'로 전환된 후 신경을 통해 근육으로 전달되어 운동이 일어난다는 가설을 세웠다.
로마 시대에는 그리스의 의학이 많은 영향을 미쳤으며 비티니아의 아스클레피아데스14)는 로마에 의학교를 설립하였고 켈수스15), 에페소의 루푸스16), 에페소의 소라누스17), 카파도키아의 아레테우스18) 등이 활약하였지만 갈레노스 이상으로 후세에 영향을 미친 사람은 없었다.
갈레노스라고도 불리는 클라우디우스 갈렌 또는 페르가몬의 갈레노스19)는 소아시아의 페르가몬에서 태어난 로마시대의 의사로 "의사의 왕자"라고 불렸다. 갈레노스의 의학적 권위는 하비의 혈액순환 원리의 발견에 의해 도전받을 때까지 서양 중세의 1500년간을 지배하였다. '실험생리학의 창시자'라고도 불린 그의 방대한 저술들은 대부분이 실험과 관찰을 토대로 한 것이지만 일부는 그 당시의 해부학적 지식을 요약한 것도 있다. 갈레노스는 사람을 직접 해부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해부학적 기술에는 일부 오류가 있었다. 뇌와 척수, 신경의 구조와 기능에 대한 갈레노스주의식 개념은 18세기 초반까지 지배적이었다. 과거로 거슬러가서, 갈레노스는 의학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 방대한 문헌들을 저술했기에 때문에 고대시대뿐 아니라 중세까지 위대한 의학자로 추앙을 받았다.
갈레노스의 가장 위대한 업적은 신경계통에 관한 것이었다. 그는 동물의 뇌를 해부하여 자세하게 설명하였는데 뇌와 관련된 많은 명칭들, 즉 뇌들보(뇌량)20), 중간뇌둔덕(사구체)21), 뇌활(뇌궁)22), 솔방울샘(송과체)23), 투명사이막(투명중격)24) 등은 오늘날까지 사용되고 있다. 갈레노스는 뇌실25)과 뇌실의 경로, 맥락얼기(맥락총)26)을 알고 있었다. 셋째뇌실과 넷째뇌실(제4뇌실)에 대한 설명은 그의 예리한 관찰력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는 영혼이 머무는 뇌를 설명하면서, 7쌍의 뇌신경들을 분류하였고, 뇌에서 기원하는 뇌신경들을 감각신경으로, 30쌍의 척수신경들을 운동신경으로 구분하였다27). 그렇지만, 갈레노스는 신경이 힘줄28)로부터 분화한다고 잘못 인식하였다. 히포크라테스와 마찬가지로, 갈레노스는 몸의 혈관과 신경의 분포가 "각 부분의 필요성과 일치하여" 존재하기 때문에 대자연도 이와 같다고 믿었다. 신경과 혈관들이 신체의 도달부위까지 안전하게 주행하고 있기 때문에 대자연도 "당연히 그렇고 능숙하고 현명한" 존재라고 그는 생각하였다.
2) 중세 암흑기와 르네상스
서구에서 중세는 신앙의 시대로 모든 질병의 원인을 신의 의지로 해석하였고 과학 면에 있어서 오히려 퇴보하였던 암흑기였다. 갈레노스 이후 해부학적인 발전은 거의 없었으며 오히려 퇴보하였고 아라비아의 학자들에 의해 갈레노스의 전통이 겨우 명맥을 잇고 있었다. 이 시대에는 뇌의 기능이 뇌의 뇌실에 있다는 개념이 나타나기도 하였다. 알베르투스29)는 뇌 속의 뇌실을 앞쪽, 중간, 뒤쪽의 세 원형의 공간으로 그려 놓았고, 첫째 뇌실은 상식, 중간 뇌실은 상상력, 뒤쪽 뇌실은 기억에 관여한다고 생각하였다. 이러한 개념은 16세기 초까지도 계속되어 1501년의 훈트30)의 도판과 1512년의 라이쉬31)의 도판에 나타나 있다.
북부 이탈리아의 볼로냐 대학에서는 몬디노32)에 의해 해부의 전통이 부활되어 공개적으로 해부가 시행되었다. 알베르투스와 같이 몬디노 역시 뇌실에 주요한 기능을 부여하여 가쪽뇌실(측뇌실)의 앞쪽은 공상 또는 기억의 보유, 중간 부분은 특수감각, 뒤쪽 부분은 상상력과 인식된 여러 가지를 통합하는 기능을 한다고 기술하였다. 또한 셋째뇌실은 인식과 예언의 능력, 넷째뇌실은 느낌과 기억을 담당한다고 생각하였다.
르네상스 시대에 모든 방면에 족적을 남긴 천재 레오나르도 다빈치33)는 실제 시체를 해부하여 이를 그림으로 남겼다. 다빈치의 초기의 뇌의 그림은 알베르투스와 같은 세 개의 뇌실을 보여주고 있으나 후기의 그림은 실제 뇌실의 형태와 같은 모습으로 나타나 그 중간에 뇌를 해부한 적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의 그림은 실제 출판은 되지 않아 후세에 미친 영향이 크지는 않았다.
최초로 뇌실의 정확한 형태를 도해하고 출판한 사람은 파비아와 볼로냐에서 해부학자, 외과의사로 활약하던 베렌가리우스 또는 베렌가리오34)이었다. 그는 갈레노스의 세동정맥그물35)이 사람에게는 없다고 갈레노스의 오류를 최초로 지적한 사람으로도 알려져 있다. 마르부르크의 해부학 교수였던 드레안더36) 또는 요하네스 아이히만37)은 최초로 머리의 해부에 대한 책 『Anatomia Capitis Humani』(1536년)을 출판했으며, 프랑스의 해부학자이며 의학서적을 출판하던 샤를 에스티엔느38)는 대뇌와 소뇌의 주름이 다른 것을 뚜렷하게 나타낸 뇌의 그림을 포함한 8장의 도판을 출간하였다.
실비우스39)는 자크 두보아라고도 하며 프랑스의 해부학자로 파리 대학에서 해부학과 외과학의 교수로 있었으며 베살리우스와 세르베투스도 그의 조수로 있었다. 그 이전까지 번호로만 구분되었던 여러 근육과 혈관에 이름을 붙였다. 만년(51세)에 의과대학을 졸업한 사람으로도 유명하다.
해부학의 역사에 가장 큰 족적을 남긴 베살리우스40)는 해부학사에 길이 남는 『사람 몸구조에 관하여』41)라는 저작을 1543년에 남겼다. 그는 사람의 구조에서 뇌의 구조를 명확하게 표현하였다. 대뇌피질의 '이랑(회)'42)과 고랑(구)43), 중간뇌둔덕(사구체)44), 뇌하수체(하수체)45), 솔방울샘(송과체)46) 등 바깥 구조들 뿐 아니라 내부의 구조들까지 명확하게 표현되어 최초로 회색질(회백질)47)과 백색질(백질)48)이 구분되어 있고 대뇌피질이 뚜렷하게 나타나며 속섬유막(내포)49), 꼬리핵(미상핵)50), 렌즈핵51) 등이 뚜렷하게 관찰된다. 뇌신경과 팔신경얼기(상완신경총)52), 허리신경얼기(요수신경총)53), 뇌신경 등도 비교적 정확하게 그려져 있다. 또한 갈레노스의 세동정맥그물(괴망)54)이 사람에게는 없다고 갈레노스의 오류를 지적하였다.
로마의 우르비노 공작의 주치의이며 해부학자인 유스타키 또는 유스타키우스55)는 뇌의 바닥부분(기저부)과 자율신경계통을 관찰하여 정확하고 아름다운 도판을 남겼다. 이 도판은 1552년에 제작되었으나 1714년에야 출판되었다. 그렇지만 19세기 초반까지의 해부학 교과서에 이 그림이 계속 사용될 정도로 정확한 그림이었다.
바롤리오56)는 볼로냐 대학의 해부학 교수였으며 당시의 해부 방법과는 달리 뇌를 바닥부터 해부하여 해마57), 시각신경58), 대뇌다리(대뇌각)59), 다리뇌(교뇌)60) 등을 관찰하였고 다리뇌에 그의 이름이 남아 있다. 그러나 그의 그림은 베살리우스나 유스타키에 비해서 사실적이지는 못하였다.
베살리우스의 제자였던 팔로피오61)는 뇌 바닥부분(기저부)의 혈관에 대해 기술했으며 카세리오62)는 대뇌동맥고리(대뇌동맥륜)63)를 처음으로 도해하였다. 카세리오가 활동하던 15세기 말에 뇌의 도해는 기술적으로 대단히 발전하여 미세한 구조까지도 정확하게 나타내고 있다.
3) 근대 발전기
17세기부터 19세기까지 신경해부학은 지속적으로 서서히 발전하였다. 17세기와 18세기에는 육안적인 관찰이 지속적으로 계속되었고 19세기 초반에는 거의 완성되었다. 17세기 초반 발견된 현미경이 17세기 후반에 실제적으로 사용되었고 19세기에는 특히 뇌 내부의 미세한 구조에 대한 많은 발견이 이루어졌다. 19세기 후반 염색 방법이 발달하면서 더욱 현미경적 관찰이 많이 이루어졌고 실험적 신경해부학적 방법이 개발되기 시작하였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신경원설64)에 대한 논쟁이 있었고 이것이 마무리되면서 신경계 구조 연구의 비약적 발전의 전 단계에 도달하였다.
철학자로 잘 알려져 있는 데카르트65)는 뇌의 구조에도 많은 관심을 가졌으며 갈레노스의 세 가지 영 이론을 버리고 하나의 영혼이 뇌의 중심부에 위치한 솔방울샘(송과선)66)에 있을 것이라고 추론하였다. 반사작용에 대한 설명도 시도하였다. 프랑스의 의사이며 해부학자인 프란시스퀴스 실비우스67)는 라이덴 대학에서 의학교수로 있었다. 대뇌겉질의 가쪽고랑(외측구)68)을 처음 기술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보렐리69)는 피사에서 수학 교수였고, 『De Motu Animalium』을 출판하였다. 보렐리는 신경활동의 물리적 개념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는 고대시대 학자들이 그렇게 믿고 수 세기 동안 받아들였던 '동물영기' 개념을 '신경의 액체와 움직이는 신경'이라는 개념으로 바꾸어 생각했다. 이것은 "포도주의 알코올 성분처럼" 밀도가 다른 휘발성의 액체로, 신경을 따라 양쪽 방향으로 움직인다. 몸의 중추에서 감각을 감지하고, 뇌로부터 근육까지 말초로 운동을 유발한다70).
윌리스71)는 1664년 『Cerebri anatome』를 출판하였으며, 신경학 분야에서 위대한 걸작이었다. 뇌의 해부학과 신경계통의 질병들에 관한 그의 업적은 근대 신경학 발전의 발판을 마련한 것이었다72). 그는 17세기에 가장 뛰어난 신경해부학자로 그 시대에 신경학 분야에서 가장 뛰어난 저작인 『대뇌해부학』73)을 1664년에 저술하였다. 이 저작은 신경계통의 해부에 대해 자세하게 기술한 최초의 저술이며, 그 시대의 천재적 건축가였던 렌74)이 삽화를 담당하여 예술적인 가치도 높다. 이 책에서 윌리스 뇌바닥부분(뇌기저부)의 동맥고리를 도해하여 대뇌동맥고리(대뇌동맥륜)75)에 그의 이름이 붙게 되었다. 그는 처음으로 줄무늬체76)에 대해 자세하게 기술했으며, 줄무늬체와 시상77)을 구분하였고, 속섬유막78)을 도해하였다. 또한 뇌신경을 분류하여 9쌍으로 기술하였으며 거의 100년 후 쇰머링이 뇌신경을 12쌍으로 재분류하기 전까지는 윌리스의 분류방법이 표준적인 분류방법이었다. '신경과학'79)이라는 용어도 그가 처음 사용하였다고 알려져 있다. 윌리스는 옥스퍼드 대학에서 교육받았으며 한동안 교수로 재직하다가 런던에서 내과의사로 개업하였다. 신경계 질환과 내과질환에도 큰 공헌을 하여 『대뇌병리학』80)을 1667년에 저술하였고, 당뇨병환자 오줌의 단맛에 주목했던 최초의 학자로도 알려져 있다.
블라시우스81)는 네덜란드의 해부학자로 1666년 척수에 관한 최초의 저작인 『척수와 신경의 해부』82)를 출간하여 척수신경뿌리83)의 형태를 처음으로 명확하게 기술하였다. 척수신경의 앞뿌리(전근)84)와 뒤뿌리(후근)85), 이의 잔뿌리(소근)86), 척수신경절87), 척수의 단면에서 H자 모양의 회색질(회백질)88)의 형태 등을 명확하게 그림으로 나타내었다. 블라시우스는 신경해부학자 보다는 동물비교해부학자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동물비교해부학에 관한 세 종류의 저작 『Miscellanea Anatomica, 1673년; Observata Anatomica, 1674년; Anatome Animalium, 1681년』을 출판하였다. 이 저술은 모두 20권이 넘는 방대한 양이며, 그 당시까지의 해부학적 지식을 집대성한 것이다.
라위스89)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해부학 교수로 혈관에 왁스를 주입하는 방법을 개발하여 뇌혈관의 미세한 부분까지도 도해하였다. 뷰상90)은 프랑스 몽펠리에 대학의 해부학 교수로 『일반신경학』91)을 1685년에 저술했으며 처음으로 피라미드(추체)92)에 대해 기술하였고 대뇌부챗살(방사관)93), 속섬유막(내포)94), 대뇌다리(대뇌각)95)과 피라미드가 연속되어 있음을 밝혔다. 올리브96)와 삼차신경절97)에 대해서도 기술하였으며 말초신경98)의 경로를 매우 자세하게 기술하였다. 몬로 2세99)는 스코틀랜드의 해부학자로 아버지(몬로 1세)와 아들(몬로 3세)과 함께 삼대에 걸쳐 백년 이상 에든버러 대학의 해부학 교수로 재직했다. 대뇌섬(대뇌도)100)을 처음으로 도해하였으나 이름을 붙이지는 않았다. 뇌실사이구멍(실간공)은 몬로 이전에 이미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베렌가리우스에 의해 도해되었으나 그의 책 『Observations on the Structure and Functions of the Nervous System(1783년)』이 후대에 큰 영향을 미쳤기 때문에 이 구조에 그의 이름이 붙게 되었다.
콘투니우스101)는 나폴리 대학의 해부학, 외과 교수였으며 뇌척수액을 밝혔고 속귀102)의 구조에 대해서 기술했으며 궁둥신경통(좌골신경통)103)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기술하였다. 젠나리104)는 이탈리아 파르마 의과대학의 학생으로 있던 1776년 뒤통수엽겉질(후두엽피질)에서 그의 이름이 붙은 층판을 발견하였다. 마리 앙투아네트의 시의이기도 하였던 프랑스의 빅 다질105)은 알코올을 사용 뇌를 고정하는 방법으로 뇌의 여러 구조들을 기술하였고 그의 『아틀라스』106)(1786년)는 매우 정교하고 아름다운 컬러 도판을 사용하는 등 매우 뛰어난 것이었다. 뇌 단면의 미세한 구조를 도해하여 유두시상로107)에 아직도 그의 이름이 남아 있다.
쇰머링108)은 당시의 뛰어난 해부학자로 독일의 마인츠와 뮌헨의 해부학 교수였으며 뇌신경을 현재와 같이 12쌍으로 분류한 것으로 유명하다. 시각신경교차109), 솔방울샘(송과선)110)에 대해 기술했으며 중간뇌의 흑색질(중뇌의 흑질)111)에는 그의 이름이 붙어 있었다. 모두 5권으로 된 방대한 해부학에 교과서 『Vom Baue des Menschlichen Körpers』(1791∼1796년)를 저술하였다. 갈112)은 비인대학의 교수로 있던 해부학자이며, 골상학113)의 창시자로 스퍼르차임114)과 함께 연구하였다. 뇌의 백색질은 신경섬유로 되어 있으며, 회색질이 정신작용을 하는 곳이라는 것을 확립하였으며, 뇌의 해부생리학이라는 4권의 저작을 출판하였다. 이 책에는 100개의 동판삽화가 삽입되어 있다. 이 당시 골상학이 크게 유행하였으며 뇌가 부위에 따라 서로 다른 여러 가지 기능을 할 것이라는 개념을 후세 학자들에게 물려주어 기능적 연구의 전환점이 되었다.
라일115)은 독일의 신경해부 학자로 처음에는 할레대학 나중에는 베를린 대학의 의학 교수였다. 빅 다질과 같이 알코올을 고정액으로 사용하여 뇌를 굳힌 뒤 해부하여 여러 업적을 남겼다. 1809년 'insula(대뇌섬)'를 처음으로 기술하고 명명(독일어 Insel)했으며, 소뇌와 바닥핵(기저핵)의 형태에 대한 많은 연구를 하였다. 롤란도116)는 이탈리아의 신경해부학자로 토리노에서 해부학 교수였으며, 대뇌의 고랑(구)과 이랑(회)이 규칙적이고 일정하게 배열되어 있다는 것을 밝혔고, 대뇌의 중심고랑(중심구)117)을 처음으로 기술하여 이 구조에 그의 이름이 붙어 있다. 롤란도는 척수아교질118)에 대해서도 기술하여 이 구조에도 그의 이름이 붙어 있다.
찰스 벨119)은 19세기 초의 뛰어난 영국의 신경해부학자로 예술적 재능도 뛰어나 자신이 책의 그림까지 그렸고 겉질척수로(피질척수로)120)가 속섬유막(내포)121)에서 아래로 이어지고 숨뇌(연수)에서 교차하여 척수로 들어가는 형태를 정교하게 도해하였다. 그의 이름이 붙은 얼굴신경마비122)를 기술하였으며 척수의 앞뿌리(전근)123)가 운동신경이라는 것을 밝혔다. 마장디124)는 프랑스의 신경생리학자로 신경계통의 실험적 연구에 큰 발자취를 남기었다. 척수 뒤뿌리(후근)의 기능을 실험적으로 확인하여, 척수신경의 앞뿌리는 운동성이고 뒤뿌리는 감각성이라는 벨-마장디의 법칙125)을 확립하였다. 뇌척수액에 대한 연구도 많이 하였고, 넷째뇌실(제4뇌실)의 정중구멍(정중구)126)에 그의 이름이 붙어 '마장디구멍'127)이라 부른다.
부르다흐128)는 프러시아의 수도였던 쾨니히스베르크에서 해부학 교수로 있었으며 신경해부학이 육안해부학의 시대에서 현미경을 사용하는 시대로 넘어가던 과도기의 시점에서, 그 이전까지의 모든 업적을 정리한 뛰어난 저술 『Vom Baue und Leben des Gehirns(1819∼1826년)』을 남겼다. 부르다하는 특히 그 이전까지 구조에 붙은 명칭을 정리하고 여러 구조에 명칭을 붙였다. 그는 척수 뒤쪽섬유단(척수의 후삭)129)의 쐐기다발(설상속)130)을 최초로 기술하여 그의 이름을 붙였다. 편도체131)를 처음으로 기술하였으며, 렌즈핵132)을 창백핵(담창구)133)과 조가비핵(피각)134)으로 구분하였다. 또한 시상135)을 분류하였고, 시상베개(시상침)136)라는 명칭을 처음 사용하였다. 그는 적색핵(적핵)137)을 자세히 기술하였고, 속섬유막(내포)138)과 바깥섬유막(외포)139)을 구분하였다. 대뇌에서 겉질밑회색질(피질하회질)140)과 대뇌겉질(대뇌피질)141)을 구분하였으며, 쐐기(설상)142), 쐐기앞부분(설전부)143), 해마이행부(지지)144), 백색판(백판)145), 띠다발(대상다발)146), 담장(전장)147), 종말판(종판)148)도 부르다흐가 붙인 명칭이다. 또한 그는 '생물학'149)이란 명칭을 처음으로 사용하였으며, 오늘날과 뜻이 다르지만 '형태학'150)이라는 용어도 처음 사용하였다. 신경해부학자로는 최초로 자서전 『나의 생애의 회고(1845년)』151)를 저술하였다.
비샤152)는 1801년 출판된 그의 『Anatomie Générale』에서 각 신경들은 각기 다른 기능들을 갖고 있을 것이라고 제안하였다. 피사에서 안과의사이며 해부 학자였던 스카르파153)는 그의 『Tabulae Neurologicae』에서, 신경의 가장 작은 가지들을 아름답고 정확하게 묘사하였다. 다른 해부학자들처럼 그도 척수신경의 신경절과 삼차신경154)의 뒤뿌리에 위치한 큰 신경절의 기능에 대하여 너무나 당황해하였다. 유명한 스코틀랜드 해부학자이며 외과의사인 찰스 벨155)은 1807년 운동신경들로부터 감각신경을 구분하였고, 신경계통을 이해하는 데 크게 공헌하였다. 그의 명작인 『The Nervous System of the Human Body』는 1830년 출판되었고, 왕립협회로 보낸 그의 원고가 들어 있었다. 또한 19세기 초에는 태아와 동물들의 신경계통을 비교 연구하는 동물비교 신경해부학자들이 많이 나와 업적을 남겼으며 티데만156), 로레157), 그라티올레158) 등이 잘 알려져 있다.
19세기 초반부터 현미경을 이용하여 뇌조직의 미세구조를 연구하는 현미경해부학이 발달하게 되었다. 이를 통해 신경계통의 여러 미세구조들이 발견되었고 신경세포의 구성과 기능을 이해하는 길이 열리게 되었다. 푸르키니에159)는 브레슬라우와 프라하에서 생리학과 병리학 교수였으며 최초로 중추신경계에서 신경세포를 확인하였고 소뇌의 푸르키니에 신경세포에 그의 이름이 붙어 있다. 최초로 박절기를 사용했으며 그전의 방법보다 개선된 고정, 포매방법을 사용하였다. 소뇌 푸르키니에 세포의 세포체와 수상돌기를 도해하였고 신경이 축삭160)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을 도해하였다. 바일라르제161)는 프랑스의 정신과의사로 파리 대학에서 의학을 공부했으며 1840년부터 살페트르에서 20년간 봉직하였다. 대뇌겉질(대뇌피질)에서 여섯 층을 구분하였고 1840년 젠나리선을 두통수엽(후두엽)에서부터 추적하여 모든 겉질에 이 구조가 있는 것을 밝혔다. 이 구조가 대뇌겉질 Ⅳ층에 있는 바일라르바깥띠162)이며, Ⅴ층에 있는 바일라르제속띠에도 그의 이름이 붙어 있다.
슈반163)은 독일의 해부학자로 슐라이덴과 함께 세포설을 주장하였고, 1838년 처음으로 말이집(수초)164)을 기술하여, 수초를 형성하는 슈반세포165)에 그의 이름이 붙게 되었다. 레막166)은 독일의 신경조직학자로 신경계통의 조직발생에 대해 연구하였으며, 민말이집신경섬유(무수신경)167)를 기술하여 이를 '레막섬유'라고 그의 이름이 붙게 되었다. 마이네르트168)는 오스트리아의 신경학자로 비인대학의 정신과와 신경과의 교수로 있었으며,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스승이었다. 연속절편 방법으로 신경계통의 조직학을 연구하여 여러 업적을 남겼다. 그의 이름이 붙은 무명질의 바닥핵(기저핵)을 처음으로 기술했으며, 뒤뒤판교차(배측피개교차)169)에도 그의 이름이 붙어 있다.
클라크170)는 영국의 신경과 의사이며 해부학자로 1851년 척수의 구조에 대한 논문에서 처음으로 클라크흉수핵171)을 기술하였다. 다이터스172)는 신경세포가 하나의 축삭과 여러 개의 수상돌기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밝힌 독일의 해부학자로, 이 신경세포의 형태를 정확하게 가쪽안뜰핵(외측전정핵)173)에서 도해하였다. 가쪽안뜰핵에 그의 이름이 붙어 있다. 29세의 젊은 나이에 장티푸스로 요절하였기 때문에 그의 업적은 친구인 막스 슐츠174)에 의해 그가 죽은 지 2년 후인 1865년에 출간되었다. 베츠175)는 러시아의 해부학자로 1868년에서 1879년까지 키예프대학의 교수로 있었다. 1874년 그의 이름이 붙은 거대피라미드세포를 발견, 기술하였다. 랑비에176)는 실험조직학의 창시자로 불리는 프랑스의 조직학자로 1878년 최초의 신경조직학 교과서 『Lecons sur l'histologie du systeme nerveaux』을 저술하였다. 여기에서 수초신경섬유의 중간 중간이 중단되어 있는 부분을 최초로 기술하였고 그의 이름이 이 구조에 붙게 되었다. 이러한 현미경적 구조의 발견에는 조직을 염색하는 방법이 큰 역할을 하였다. 염색 방법을 최초로 사용한 사람은 겔라하177)이며 1858년에 카민을 염료로 사용하여 소뇌를 염색하였다.
그 후 골지178), 바이게르트179), 카할180), 니슬, 빌쇼프스키181), 오르테가182) 등에 의해 신경계의 여러 성분을 염색하는 다양한 방법이 개발되었다. 바이게르트183)는 독일의 신경병리학자로 프랑크푸르트대학의 병리학 교수로 있었으며 말이집 염색방법을 개발하였고 셀로이딘 포매방법을 완성시켰다 니슬184)은 독일의 정신과 의사이며 신경병리학자로 뮌헨의대 재학 중 대뇌겉질의 신경세포의 병리학적 변화에 대한 논문으로 대상을 받을 정도로 일찍부터 연구에 몰두하였다. 졸업 후 뮌헨의대에서 구덴185)의 조수로 있었으며, 폰 구덴이 죽은 후 프랑크푸르트로 옮겨 에딩거186), 바이게르트를 만나 영향을 받았고, 알츠하이머와는 7년 동안 함께 연구하였다. 그 후 하이델베르크대학으로 자리를 옮겨 연구를 계속하였으며 1904년에는 크레펠린의 뒤를 이어 정신과의 교수가 되었다. 1894년 알코올과 염기성아닐린염료(메틸렌 블루, 톨루이딘 블루 등)로 신경세포를 염색하는 방법을 발표하였고 니슬소체를 처음으로 기술하였다. 1918년에는 뮌헨으로 돌아가 독일정신과학연구소에서 연구에 몰두하였으나 그다음 해에 사망하였다.
또한 19세기 후반부터는 신경계의 특성을 다양한 실험적인 방법으로 연구하기 시작하게 되어 신경계통의 구성과 기능을 직접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월러187)는 영국의 신경생리학자로 1850년 개구리의 혀인두신경(설인신경)이나 혀밑신경(설하신경)을 절단하면 그 먼쪽부위는 완전히 변성되는 사실을 발견, 기술하였고 그 원인을 세포체에서의 영양물질 공급의 장애에 의한 때문이라고 주장하였다. 신경 손상 후 먼쪽부위의 변성을 월러변성188)이라고 한다.
브로카189)는 처음에는 파리 비샤트르의 외과 의사였으며 1861년 임상 경험과 환자의 부검에서 뇌의 관찰을 연결시켜 브로카 영역이 손상된 환자에서 운동성실어증이 나타난다는 것을 보고하였다. 1877년에는 대뇌 가쪽뇌실(측뇌실) 주위의 구조를 변연엽190)이라고 명명하였다. 나중에는 체질인류학에 흥미를 느껴 체질인류학적 머리(두개) 측정에 기준점을 만들어 이를 계측하였고, 여러 가지 수학적 방법으로 측정치를 비교하였다. 유명한 사람들의 뇌를 측정하였고 이들을 모아 파리에 사람박물관을 세웠다.
독일의 신경정신과학자인 구덴191)은 어린 토끼 뇌의 일부분을 손상시킨 후 시기별로 뇌의 변화를 연구하여 뇌의 각 부분의 연결을 구명하였다. 1884년 시상하부의 유두체192)에서 다리뇌(교뇌)의 뒤판으로 이어지는 유두뒤판로(유두피개로)193)가 끝나는 핵인 앞뒤판핵(복측피개핵)194)과 뒤뒤판핵(배측피개핵)195)을 발견하였다. 정신이상 증세로 권좌에서 축출된 루트비히 Ⅱ세를 치료하는 과정에서 환자에게 살해당한 의사로도 유명하다. 스위스 바젤의 히스196)는 발생학적으로 신경계통에 대해 연구하였고, 독일 라이프치히대학의 정신과 교수인 플레시히197)는 신경계의 각 부분에서 말이집이 발달되는 양상을 연구하였고 피라미드로(추체로)198)의 발생 양상을 밝혔다. 포렐199)은 스위스의 신경병리학자로 셀로이딘을 포매제로 하고 그의 스승인 구덴이 고안한 박절기를 사용하여 신경해부학 분야에서 많은 연구를 하였다. 시상밑부의 섬유다발에 그의 이름이 붙어 있으며, 앞뒤판교차(복측피개교차)200)에도 그의 이름이 붙어 있다. 손상된 신경세포의 병리학적 관찰에 의해 골지의 신경그물설201)을 부정하여 신경원설202)의 토대를 마련했다.
마르키203)는 이탈리아의 조직학자로 1885년 오스뮴산이 변성된 신경섬유의 말이집을 정상과 다르게 염색한다는 것을 발견하였고, 이를 이용하여 소뇌다리(소뇌각)204) 등 많은 신경로의 기원을 밝혔다 에딩거205)는 독일의 신경해부학자며 신경과 의사로 현대 동물비교신경해부학의 창시자로 알려져 있다. 1885년 태아의 중간뇌(중뇌)에서 동공 수축에 관여하는 구조를 발견하였고, 2년 뒤 베스트팔206)은 어른 중간뇌에서 이 핵을 발견하였다. 포크트 부부, 즉 독일의 신경과 의사인 오스카 포크트207)와 프랑스 출신의 세실 포크트208)는 베를린신경생물학연구소를 세웠고, 베를린의대 교수, 빌헬름황제 뇌연구소 소장으로 활동하였다. 대뇌겉질의 세포구축학적 연구, 특히 말이집염색을 사용한 수초구축학적인 연구를 하였다. 러시아혁명을 주도한 독재자 레닌209)의 뇌를 연구한 학자로 잘 알려져 있으며, 레닌 뇌의 겉질 신경원의 배열이 질서정연하게 되어 있다고 하여 이를 "연합피질의 운동선수"라고 찬양하였다. 독일의 작가인 슈펭글러는 최근 『레닌의 두뇌』210)라는 포크트의 전기를 써서 이를 비판하였다.
브로드만211)은 포크트의 제자였으며, 대뇌겉질영역의 조직학적 구분에 큰 공헌을 하였다. 그는 뮌헨, 뷔르츠부르그, 베를린 등 여러 대학에서 의학을 공부하였으며 프라이부르그에서 의사면허를 얻은 후 1896년 오스카 포크트를 만나 그 후에는 신경계의 연구에 몰두하였다. 포크트와 함께 베를린신경생물학연구소에 있었으며, 1910년에는 튀빙겐으로 옮겼다가 뮌헨으로 가서 크레플린, 니슬과같이 연구하던 중 사망하였다. 19세기에서 20세기로 넘어가는 시점에 신경원이 신경계의 기본단위이며 축삭이 신경원에서 나온 하나의 돌기라는 신경원설212)이 카할213)에 의해 제기되었고 골지214) 등은 이에 반대하였다. 신경원설은 발다이어215), 쾰리커216) 등의 지지로 점차 지지기반을 넓혀나갔으며 전자현미경으로 확인되었다. 신경원설은 현대 신경과학의 기초가 된 중요한 학설이었다.
쾰리커217)는 스위스 취리히의 해부학 교수로 일생동안 신경계의 조직학적 구조를 연구하였다. 카할218)과 발다이어의 신경원설을 지지하였다. 축삭이란 용어를 처음 사용한 사람으로도 알려져 있다. 발다이어219)는 독일의 해부학자로 브레슬라우대학에서는 병리해부학교실의 교수였으며, 베를린대학으로 옮긴 뒤에는 해부학교실의 교수가 되었다. 신경세포체와 돌기를 신경원이라고 명명하였고, 신경원설을 주장한 학자로 널리 알려져 있다. 척수 등쪽뿔에 있는 세포에 그의 이름이 붙어 있으며, 입안(구강)에서 인두로 이행되는 부위를 둘러싸고 있는 림프조직을 부르는 명칭인 발다이어고리220)에도 그의 이름이 붙어 있는 구조이다.
골지221)는 이탈리아 파비아 대학의 조직학과 병리학의 교수로 1873년 돌기를 포함한 신경세포 전체의 형태를 관찰할 수 있는 특수한 염색방법을 고안하여 신경세포의 구조의 연구에 있어 혁명적 변화를 가져 왔다. 신경원을 제Ⅰ형과 제Ⅱ형의 두 가지로 분류하였고, 골지힘줄기관222)도 발견하였으며, 1898년에는 처음으로 골지복합체223)를 신경세포에서 발견하였다. 이 중 골지복합체는 다른 모든 세포에도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러한 공로로 1906년 카할224)과 함께 노벨의학상을 수상하였다. 신경의 돌기들이 서로 이어져 그물과 같은 구조를 이룬다는 신경그물설225)을 주장하였으나 오류로 밝혀졌고, 결국에는 신경세포가 독립된 형태적, 기능적 단위라는 신경원설로 대체되었다.
카할226)은 스페인의 신경조직학자로 역사상 가장 위대한 신경해부학자라고 까지 말할 수 있는 인물이다. 골지의 금속도금염색으로 거의 모든 척추동물의 신경계통을 연구하여 신경학에 수없이 많은 기여를 하였다. 신경원설을 완성시켰으며, 시냅스를 발견하였고 신경세포에서 정보는 가지돌기(수상돌기) 쪽에서 세포체를 거쳐 축삭종말로 전해진다는 역동적 극성화의 개념을 정립하였다. 그 자신이 저술하고 모든 그림까지 그린 거의 2,000페이지 분량의 『인체 및 척추동물신경계통의 조직학』227)은 1909~1911년에 프랑스어로 번역 보완되었고 이의 중판이 그의 사후인 1955년에 다시 나올 정도이며, 1995년에는 영어로도 변역 출간되었다. 처음 출간된 지 90년이 된 지금까지도 아직 교과서와 논문에 인용이 되고 있는 거작이다. 또한 1928년에 영어로 번역 출간된 『신경계통의 변성과 재생에 대한 연구』228) 역시 이 분야에서 많이 인용되고 있다. 또한 그는 여러 염색방법도 고안하였고 이 중 별아교세포(성상세포)229)를 염색하는 금승홍법230)에 그의 이름이 붙어 있다. 1906년 골지와 함께 노벨상을 수상하였다.
4) 신경과학의 폭발적 성장
20세기에 와서 신경해부학을 포함한 신경과학은 폭발적으로 신속하게 발전하였다. 학자에 따라서는 '해부학적 방법의 문예부흥기'가 도래하였다고 할 만큼 새로운 테크닉이 나오고 있으며, 연구의 양과 질적인 측면에서 가공할 정도로 자료가 쌓이고 있어 신경계의 신비가 이해할 수 있을만한 수준으로 풀려가고 있다. 20세기에 들어와서 신경조직 배양방법의 발견과 전자현미경231)의 개발, 각종 신경로 추적 방법인 변성섬유의 은염색232), 자기방사법233), HRP 등 추적물질을 사용한 신경로 추적234)의 개발, 그리고 단세포염색방법, 형광조직화학염색, 면역조직화학염색, 인 사이투 하이브리드형성, 기타 컴퓨터단층촬영(CT)235), 자기공명영상촬영(MRI)236), 양전자방출단층촬영(PET)237) 등 신경영상방법의 발전 등 수많은 새로운 방법이 개발되었고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다.
이들 방법을 이용한 연구 결과는 과거의 신경계의 구조와 기능에 대한 개념을 바꿔놓고 있는 중이다. 아직 20세기의 연구자들이 생존해 있는 경우가 많고 역사적인 판단이 내려지기 어렵기 때문에 20세기의 신경과학은 아직 역사로 정립될 수 있는 단계라고 할 수는 없지만, 최근 이를 정리해 보려는 노력들이 많이 나타나고 있다238).
향후 신경계에 대한 연구는 지속적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그리고 그 신비가 하나, 둘씩 벗겨져 나갈 것이다. 과학은 그렇게 진보되어 왔고 여전히 미래를 향해 나아 갈 것이다. 우리들이 학문과 기술의 발전의 역사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누군가의 노력과 열정으로 미로의 출구를 찾아 나가듯이 신경계의 신비는 풀려 갈 것이다. 그리고 보다 세상에 기여할 수 있는 해부학적 발견의 역사가 쓰여 질 수 있을 것이다.
요번 포스팅 주제는 로스트 치킨 샐러드 밀 박스 이라는 것과 신경해부학의 역사 이라는 것 에 기초하여 알아보았는데요.
마음에 좀 드시나요?
그럼 오늘 하루도 즐거운 하루 되세요.
요기까지 먀리꾸 였습니다.
다음에 또만나요!
안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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